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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 회장님

basileia 2019. 6. 5. 13:10

한 노신사를 한국에서 만났습니다.

미국 ATA 회장님이었어요. Arkansas 에서 Bill Clinton 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부터 그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태권도 사범이시지요. 이행웅 총재입니다.

미국 태권도 역사상 제일 큰 태권도 도장 체인인 American Taekwondo Association (ATA) 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ATA 의 특성은 우리가 알고 보아왔던 식의 태권도 가르침과는 좀 차이가 있었습니다. 약간 미국식(?) 이라고 할가요? 일반 사람들이 누구나 즉 남녀노소가 쉽게 한 번 해보고 싶은 정도의 일종의 일반 스포츠 형식으로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태권도의 승단심사나 과정이 완전히 family fun 수준으로 미국 사람들에게 좀 더 맞도록 특이하게 발전시킨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다리 올려차기 는 다리를 자기가 올리는 만큼만 올리도록 하고 그 이상의 무리를 주지 않으며 그 정도 올렸으면 적격성을 인정을 해 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는 동안 미국에서만 약 24만명의 membership 이 등록 되었으며 계속 증가 추세로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문제가 생겼지요. 즉 이와같은 방식을 본토 즉 한국 국기원이 좋아 할 리가 없었습니다. 태권도의 정통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여 이는 태권도가 아니라는 즉 본연의 자세를 지키려는 당연한 (?) 결정을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질시와 이단 취급을 하게 되었으며 전혀 인정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세계태권도연맹회장인 김운용 총재가 이행웅 총재에게 그의 앞에서 실력 평가를 위해 대련을 해 보라고 하는 매우 치욕적이며 비하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접 받기는 커녕 질시를 받는 상황에서 이행웅 총재는 그래도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세계 태권도 종주국으로 심어주기 원하여 태권인들을 데리고 태권도 성지인 한국에 방문하면 한국 국기원에서는 전혀 영접은 커녕 아랑곳하지도 않아서 이행웅 회장은 자기 사비를 내어 함께 온 미국 사범님들 300명을 데리고 현충사를 방문하고 또 정부 초청 만찬이라며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는 수모적인 여행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합니다. 한국 관련 기관으로 부터 너무나 심한 푸대접을 받아 왔지만 '태권도 사랑' 이라는 그의 열정은 모든것을 감수하며 미국내에서 계속 정상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를 들르게 된 두 부부를 집으로 초청하여 하루 저녁을 새우며 나눈 많은 이야기 속에서 그의 진실되고 순전한 태권도인으로서의 향기를 가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후 알칸사에 ATA 세계 본부건물 건축이 완료되어 전국의 무술인들이 초청되고 태권도인들이 모여 준공 테이프를 끊고 큰 잔치가 벌어지던 날 나는 뉴욕으로 부터 알칸사로 초청받아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그 분의 공적을 치하하고 위로하고 축복하고 마음껏 기뻐해 주고 싶었지요.

큰 행사 후에 30인의 각 무술계 무장들만 모여 자축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나도 그 자리에 특별히 친구 (?) 로써 초청을 받았습니다. 결국 되도록이면 좋은 양복으로 갈아 입고 참석을 했는데 거기다가 축하 메세지까지 전하게 되었지요.

내 메세지는 무척 간단했습니다.
전혀 알아 주지도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무례한 대우 속에서 꾿꾿히 그리고 말없이 "태권 한국" 을 지켜 온 걸음 걸음에 찬사와 박수를 마음껏 보냈지요. 듣는 동안 총재 본인이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만큼 인정 받지 못하고 외로운 길을 걸어 온 분의 회한과 오늘을 선 보람이 매우 엄숙하게 모두의 마음을 적셔 왔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던 어느 날 전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소림사를 연결해 줄 것을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아~~ 아직도 한국에서 반기지도 환영도 없으니 중국쪽 비슷한 무술을 하는 곳으로 여행을 하시려는가 보다" 해서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러던 중 약 한 달 반이 소식이 없어 내 쪽에서 연락을 해 보니 그 중요한 태권도 세계대회에 불참 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갑자기 폐암 판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두문불출 중이시라는 것입니다.
아~~... 암담 했습니다. 어이가 없었지요. 가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불일듯 일어났습니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 것들 중 하나가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미국 국내선. 그것도 2번씩 갈아타고 가야하는 곳.

그러나 그런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모님께 전화를 하니 누구든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연락을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만나주시겠다는 것이었지요.

나는 기도하면서 복음 전 할 것을 마음 깊이 먹게 되었는데 이에대한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알칸사에 도착하니 아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아들차를 타고가는 동안 "내가 아빠를 전도하려 한다" 고 했습니다. 아들은 너무나 놀라 차를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잘 못 오셨으며 차라리 바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식구들이 Christian 들 이었으며 그 동안 얼마나 전도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오히려 그러한 사실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들을 쏟아내었습니다. 결국은 아무도 말도 꺼내지 못한채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만일에 그런 목적이었다면 자기는 그 자리에 도저히 함께 있을 수 없으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테니 끝나는대로 연락을 달라고 까지 했습니다.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였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한 숲으로 쌓인 그림과 같은 Ranch 즉 단층집에 도착하니 수심으로 가득하신 사모님이 나오셨고 곧이어 이 총재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주 강인하게 단련된 분으로 늘 자기 몸이 모든것의 기본이었던 이 총재님은 폐암이라는 판정을 받자마자 털썩 주저앉고 말은 것입니다.

"총재님, 예수님을 본인의 구세주로 받아드리십시오. 제가 이 말씀 한마디를 해 드리기를 원하여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가라고 허락 하셨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복음을 전달하였고 총재님은 결신기도를 따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루를 더 유하며 주변의 한국인 교회를 알아 보았는데 주변 한국 교회에는 이미 총재님의 친척들이 두루두루 포진하고 있어서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총재님은 미국 사범들의 권유로 얼마간 미국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모든 24만 ATA Member 은 기도하며 회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뉴저지에 돌아와서는 약 한 달 남짓 구원에 관한 성결구절을 열심히 찾아 Fax 로 보내드려 매일 읽어 보시라 했고 참으로  많은 성경 구절들을 보내드렸지요.

약 3일간 연락이 뜸하던 어느날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돌아가셨고 막 장례를 끝냈다고 하셨습니다.

긍휼과 자비가 있었던 큰 일군이었습니다.

요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