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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라는게 아닙니다
basileia
2019. 11. 18. 04:38
사람들 모두다는 그대로 두면 죽고마는 그것도 영원히 멸망받는 길을 가고 있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육신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체인 영혼의 완전한 죽음까지 다 포함된 것을 말하는데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있어 이 모두가 다 죽는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운명에서 속히 벗어나 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소위 '구원' 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오로지 한 길 뿐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님을 모르면 길이 아닌곳에 선 것이요 거짓속에 있음이요 죽음 가운데 거하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창조자의 말씀이니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어 관에 들어가고 땅에 묻히면 죽었다고 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이를 '잔다' 고 합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근면간에 깨어날 것이기 때문이지요.
(누가복음 8장)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런데 그 후에 진짜 죽음이 있습니다. 영원한 멸망이지요. 이는 심판때에 이루어집니다. 인지 될 수 있는 영원한 고통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후에 심판이라… 육체의 죽음은 육신만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며 영과 혼 역시 심판을 기다리게 됩니다. 실상 육신의 죽음은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에 비유될 수 있지요. 내 옷은 진짜 내가 아닙니다. 그 옷을 벗어 놓았는데 사람들은 죽었다고 애석해 하지요. 그러나 진짜 나는 그 옷에서 빠져나간 내가 진짜 나입니다. 이를 영혼이라 하지요. 바로 내 실체인데 이 진짜 내가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선한일은 사람의 도덕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일을 말함이요 악한일은 하나님을 역행하는 모든것 즉 불순종을 말합니다.
심판의 부활은 후일 심판의 날에 심판대 앞에서 생명록을 스스로 확인하여 자기의 이름이 없음으로 영멸에 처해지는 것을 직접 보게되고 공평함으로 처리되는 과정으로만 남아있어 이미 이 사람은 소망이 없는 상태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Revelation 20:11-15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을 내리시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창세기 6장)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도 기쁨으로 사람을 만드셨건만 죄로 인하여 시도때도 없이 자행되는 사람들의 불법으로 엄청 마음이 아프셨지요. 그래서 노아의 방주 사건이 터지게 되었어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때 그 마음이 하나님의 지금 시대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품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중에 노아 가족처럼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지금도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알림에 게으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말씀을 전할때에 두사람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해도 완전히 달리 받아드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전하는 자도 책임이 있지만 받아드리는 사람의 마음 상태도 엄청 중요하지요.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마귀까지 합세하여 방해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말씀의 바른 전달이 어려운데 오죽하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주로 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마태복음 13장)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시고는 해석도 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3장)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받아들이는 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식입니다.
육신이 하루 삼시세끼를 먹지 않으면 배가고파서 힘이 없고 점점 지치고 아무일도 못하다가 더 오래 그렇게 굶으면 죽게되지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짜 우리인 영혼의 양식이랍니다. 영혼이 말씀을 먹지 못하면 피폐해져서 시들다가 영원한 죽음에 다다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