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7. 07:43ㆍ카테고리 없음
성령을 인도하려는 사람들
성경에는 평신도라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성도가 있지요. 그래서 모두가 성도입니다.
성경은 성도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계명 즉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믿음 즉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알고 그로인하여 죄사함을 받은 후에 예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 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맡은 직분이 다르므로 호칭이 다를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이정표와 같지요 “저리로 가시면 천국을 만납니다. 잘 보고 가세요” 목회자가 Application 까지 주면 혹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 말씀이 본인의 삶과 희석되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예민한 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2: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성도를 특히 교역자나 중직자라는 표현을 함께 쓰면서 평신도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입장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정해지는 것이며 이는 극히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소명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속에서 성경을 적용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서로가 이리저리 얽혀서 세상의 방법을 기준으로 정해진 직분은 때로는 각 사람의 받은 소명에 방해를 주거나 그 받은 달란트를 하감시키며 더군다나 어떤 경우는 전혀 관계없는 생각이나 삶으로 잘 못 인도하여 그 생 전체를 아예 망가뜨릴 수도 있음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일일이 묻지 않고 기도없이 행하여지는 모든 행위는 결국 하나님을 자기의 생각대로 몰고 가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결국 일평생을 자기의 목표를 고집하며 하나님과 부딪치는 삶을 살다가 한 많은 인생으로 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역은 실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십니다. 그러는 중 우리에게 기회를 허락하시면 우리는 순종하든지 아니하든지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나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후에 주신 말씀들이 갖는 Focus 가 조금도 바뀌면 안됩니다. 아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우리 한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으로 들어와 계시기로 결정을 하셨으리라 봅니다. 우리의 입장과 차원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우리의 지혜로는 아무일도 나지 않으니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대언하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겔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렇습니다. “대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 그대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굳이 각자가 자기의 이성이나 감성을 섞고 혹 무엇이 부족한듯이 이것 저것을 더하거나 빼면 말씀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오히려 화가 있을 수 있지요.
(예레미야 23: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말씀이 있는 그대로 대언되면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인격이 걸린 이 말씀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지시고 이루어지도록 하시지요. 예를 들어 제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곧 저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는 나의 모든것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제 말 따로 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내 생각과 계획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는 수가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지식과 경험과 능력 안으로 하나님을 집어 넣으려 하거나 인도하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대단한 힘으로 버티면서 하나님을 이해시키는데 엄청 열을 내지요. 매달려 호소도 해 보고 슬그머니 꼬셔도 보고 타협도 해 봅니다. 어름장도 놓고 위협도 하지요. 아무튼 자기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이 댑니다. 아니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자기가 만든 “하나님의 뜻” 을 내세우면서 왜 실행 하지 않는가고 야단도 쳐 봅니다. 그러나 참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먹히지 않으며 점점 더 매를 번다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요사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도무지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 반드시 점검이 필요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에 나와계신 바로 그 분이 맞는지를 분명히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대부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자기의 하나님을 각자 만들어 믿는데 이를 바로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요. 성경에 묵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역대하 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여기에 굉장한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였고” 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난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맡긴 상태를 보여 줍니다. 자기의 계획이나 소원이 아닌 또는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도 아닌 바로 ‘하나님’ 을 구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바로 그 분 자체를 구한 것이지요. 그야말로 모든 좋은것을 구한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형통케 하셨더라” 보다는 “형통 할 수 밖에 없었더라” 로 쓰고 싶지 않으셨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는 말씀대로 사는 이에게 보장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자체가 바로 생명이지요. 묵시…하나님의 하시고자 정한 바로 이 묵시를 인간의 시간과 공간안에 펼쳐 주신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바로 “History” 즉 늘 이야기 하는 “His Story” 이지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정한 때가 있다는 것은 이미 결정이 나있는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그 하나님의 나에 대한 계획을 먼저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연류되어 보이는 모든 것들을 놓고 내가 제대로 길을 가는지를 일일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 12:27-2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하나니 28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찌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생각에만 젖어 사는 인생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사야 29:10-16)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11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12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13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15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자~ 우리로 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아니 나와서는 안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만을 주십니다. 바로 그것을 찾아 누리는 것이 우리의 기도요 간구입니다. 우리의 마음판으로는 성경 구절 하나도 제대로 해석이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감사와 찬양 이외는 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우리의 장래를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더욱 더 풍성하고 복 된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