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3. 06:19ㆍ카테고리 없음
http://www.youtube.com/watch?v=fhcjsCk8ByU
“사랑의 시” 라는 해바라기 노래에요
곡과 가사가 아름다워서요
남편과 아내
(KJV흠정역(HKJV)) Genesis 2:21-25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2:22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24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2:25 그 남자와 그의 아내가 둘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더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이야기 입니다.
Ephesians 5:1-2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보의 의미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여보 = “보배와 같다”
당신의 뜻은 “내 몸과 같다”
그리고 여편네의 뜻은 “늘 옆에 있는 사람”
마누라 (아내) 는 “마주보고 누워라”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에베소서 5:22-24
[아내와 남편]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그런데 남편이 무언가 모자라 보이지요?
잘 보셨습니다.
창 2 :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내 뼈중에 뼈… 즉, 가장 중요한 골격이 빠진다면……
다시 말하자면 당신이 나왔기 때문에 당연히 나사가 빠진 것입니다.
그런 당신 남편을 질타하면 그건 당신 얼굴에 스스로 침 밷기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잘 이해하시면 도움이 될것입니다.
그 모자라거나 빈 자리를 바로 메꾸어 하나의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당신 즉 아내들의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눈에 이런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이지요.
이제 부터는 이 세상의 다른 것들과 비교하여 내 감정에서 끓어오르거나 솟아나는 짜증이나 잔소리가 변하여 돕는배필로서의 사역으로 가야하는 이유입니다. 누구와도 절대 비교하지 마세요. 아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하나되어 그 자체가 아름다우며 귀하지 않은 사람이란 없으니까요. 나는 나로 꽃 피우고 너는 너로 꽃 피울 수 있는 세상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창 2 :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계시지요. 즉 아내 창조의 목적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내들은 “우리 남편이 이렇게 되면 정말 좋겠는데……”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바로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내가 해야 할 바로 그 자리를 본 것입니다. 바로 소명을 깨달은 것이지요. 이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니 자기가 들어가야 할 그 소망의 자리에 들어감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질서에 따라 반드시 남편을 세우실 것입니다. 아내들은 답답함에 “아니야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낫겠어” 하고 싶을 때가 많지요? 그것은 남편을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오늘 당장 내 눈에 어떻게 보이든 하나님은 그 남편에게 기대를 걸고 계시며 사명을 주시고 목적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고 기도해 주세요. 그 위에 위로를 더 하시되 성경을 바탕으로 하시지요. 남편은 그 누구의 어떤 수모도 참을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함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내로 부터 오는 세상적인 면에서의 공격은 남편을 실제로 낙담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과연 주 사람에게 좋을까요?
처음 연애때는 완전히 하나였었지요. 자기보다는 상대방의 생각에 먼저 매우 예민 하였으니까요. 언제 부터인가 식어져 버린 서로를 향한 그 기대와 사랑을 회복하여 꿈을 이루어야 하겠지요?
남편들 특히 한국 남편들은 속 마음에 대한 자기 표현력이 좀 약합니다. 오해받기 딱 좋지요. 자기가 어려서부터 받아보지 못한 까닭도 있으며 그러한 부모님을 보고 자란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유교 전통에 의해 우리들 안에 그러한 퀘퀘한 DNA 가 흘러서도 그렇답니다. 그렇다고 표현력이 없다는 것 뿐이지 마음도 그렇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미국인들 처럼 앞에서 입바르게 겉으로 드러나는 칭송과 과잉 친절로 대하다가 아예 헤어지는 모습과 비교해서 보면 그들이 절대로 따라 올 수 없는 깊음과 배려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남자들은 때로는 아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 소리에 잘 경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머리속에 전 지구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와 내 가족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늘 남자들의 기본 마음가짐에 깊이 자라잡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고 그렇기 때문에 돈도 번다고 생각을 하지요. 그러나 표현도 못하고 또는 하는 일들이 뜻대로 잘 따라오지도 않아 차마 말도 못한 채 눌려 있어 머리 속의 여유가 없어 그렀습니다. 그러다가 아내와의 약속도 곧 잘 잊어버리기 일쑤이고 어떨때는 생일, 결혼 기념일 마져도 잊어 버립니다. 이는 관심이 없거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엎친데 덥친다고 아내가 자주하던 무슨 말을 모처럼 또 남편에게 하면 마치 화들짝 처음 들은 사람처럼 “그러냐?” 고 하여 아내를 실망시킵니다. 그 잔잔하던 관심과 진솔함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남편들은 그것을 정말 처음들은 것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통 기억이 나지 않거든요. 그리고 혹시 기억이 난다해도 그 말을 할 당시 그렇다고 대답한 것은 지금 당신이 말하는 그 뜻이 아니었는데… 하고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그러다 보면 남편들은 자연히 말을 덜하게 됩니다. 사사건건 시비가 생기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지요.
이 세상이라는 땅의 삶은 늘 이렀습니다. 1940년대와 비교하여 그 당시 사람들이 그 수준을 유지하려고 일을 한 시간의 양을 비교해 볼 때 지금은 50배의 일을 해야 그 삶의 수준을 맞출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남편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이를 잘 이해하는 아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사랑을 먹고 살며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평소의 리듬과 다른 일들이 벌어지면 바로 “안전” 에 대한 위기의식이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바로 이 소중한 사랑과 가정이 잘 지켜져야 할텐데에 대한 불안이지요.
http://www.youtube.com/watch?v=8T4zkewkyfA
행복을 주는 사람
Ephesians 5:25-31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남편들도 마찬가지에요. “아 그래서 내가 좀 모자랐구나” 를 알고 시작하면 되지요.^^
남자가 완벽(?) 하다면 이것은 오히려 정상이 아닌것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누가 만들었기에 그렇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혹시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뼈따귀를 끼고 있지 않은가요?^^ 그러나 이미 결혼하신 분들은 이에 해당이 없어요. 현재 부부들은 말 할 것도 없고 혹 결혼을 위하여 짝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뜻으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돕는배필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나요? “아~~ 그래서 밥해주고 빨래 해주고 아기 보아주고 또 내 심부름도 해주고 또한 나의 여러가지 만족을 위해서 수고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시지요? …그 보다 더 큰 뜻을 가지고 아내는 남편에게 왔습니다.
아내 만큼 남편을 잘 알고 기도하며 보필을 해 주는 존재는 이 땅에 없습니다. 오히려 그 부모님 보다도 더 하지요. 두 사람은 실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내의 눈에 남편의 모습이 비칩니다. 무언가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나 생각에 차이가 있을 경우에 아내는 남편에게 조언을 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남자 본능적인 기질로 이를 잘 듣지 않게 됩니다. 한 두번을 기다리다가 해결이 나지 않으면 아내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하게 되고 그 강도는 점점 더 강하게 되어 남편은 이를 잔소리 또는 자신을 얕잡아 보는 행위로 오해합니다. 결국은 싸움을 하게 되거나 아내 쪽에서 포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들은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의 입술을 통하여 주시는 진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음성” 을 놓치고 살게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손해인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돕는 배필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우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내의 소명입니다. 아내는 자기의 일시적인 기분에 지금 휘말려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내가 받은 자기 소명을 자기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야 두 사람이 온전히 하나를 이루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계신 것입니다.
아내를 보십시오. 그 아내야 말로 수년간 자신을 키워 준 부모님을 떠나 남편 하나를
기대하며 자기 전부를 걸고 그동안 새로운 꿈으로 그려왔던 바로 그 삶을 위하여 남편에게 와 버린 귀하고 귀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에게는 바로 자기 남편이 전부입니다. 꿈이요 소망이요 생명과 같은 것이지요. 가끔 아내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이야기들을 나눌때 각기 자기 남편을 자랑하거나 혹은 어떤 아주 잘 나가는 남자가 자기의 잘남을 뽐내어도 그것을 듣고 있는 아내들의 마음에는 “그래 너 잘난것 다 알겠어 그러나 너는 내 남편의 이런 면은 네가 두 발 벗고 뛰어가도 안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 최고의 자존심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런 아내를 그 동안 어떻게 생각해 오신 것입니까?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면 아내들은그 스트레스를 (소명을 다 할 수 없어 오지만 그것을 아내 자신도 모릅니다) 감당하지 못하여 여러가지 증상을 나타내게 됩니다. 밥을 많이 먹는달지, 화장을 짙게 한달지, 옷을 많이 사고 마구 돌아 다닌달지…..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그래도 남편들이 그 원인을 도무지 모른 채로 이렇게 아내의 보이는 증상에만 머무르고 이를 타발하고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파탄의 위험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남편의 옆에서 남편의 앞 날들을 위하여 가장 많이 수고하고 애를 쓰는 사람은 바로 당신의 옆에 있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부부의 마음 합함은 정말 중요하지요. 왜냐하면 두사람이 기도하면 이루어 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나마 마음을 하나로 합 할 수 있는 두 사람이란 이 땅에 부부 밖에는 없으니까요.
마 18 :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라고 하셨지요. 기도가 이루어 진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어 일하시겠다는 엄청난 약속이요 보장입니다. 이러한 특권을 포기 하시려는 것은 아니지요?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일반적으로 두 세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을 하시지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가 아닙니다.
자 그러니 부부가 무언가 하나되지 않은것이 점검되면 빨리 하나되세요. 이미 많은 것을 놓쳤으나 그래도 천국은 풍요하니까요. 버틸수록 손해입니다.
마태 19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시면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하셨지요? 사람은 단수인데 남자와 여자는 두 사람입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 즉 부부는 하나라는 뜻이지요.
마태 19 : 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19 : 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이렇게 확실하게 성경에서 해석을 해 주시지요. 그런데 인위적인 그 어떤것을 인하여 서로의 몸과 마음이 나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길다면 긴 이 광야와 같은 인생길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가장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이며 참 친구로 서로의 짐을 덜어주고 서로 일으켜 세워주며 끝까지 참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용서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들로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