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4. 08:30ㆍ카테고리 없음
부활
죽음은 누구도 다루기에 부담이 있는 문제입니다. 게다가 단어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마음을 굳게하는데 이 세상의 결국 즉 모든 삶이 끝나고 떠나게 되는데 육체적으로는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던 그 현실 자체를 영원히 이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미 다 알고있듯이 한 번 가면 이 세상으로 다시는 올 수 없는 것이지요. 대 부분의 경우 죽음은 그 이상 아무 생각의 여지가 없는 그저 “끝” 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히 죽음은 가장 두려운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여기에 대한 싸아~한 공포는 이미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도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이렇게 불안한 상태의 보장된 암울한 미래로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그저 속수무책의 큰 재앙인 것입니다. 어떤이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면서 이를 기점으로 많은 것을 돌이키는 계기로 삼기도 합니다. 그냥 땅에서 마구 질주하다가도 갑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스스로 제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한 것이지요. 즉 스스로가 한계라는 분명한 Line 을 구체적으로 접해 보는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상황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에 대한 갈망을 갖게 하고 전지전능한 신을 바라보거나 찾게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목표를 향하여 최선을 다 해 살아갑니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다가 좋은 학교를 다니고 좋은 직장을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나 사랑하고 자녀를 낳고 열심히 일을 하여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일평생 힘을 씁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사람은 갑자기 또는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기서 부터는 바로 설명이 되지 않고 어이가 없이 모든것이 물 거품 처럼 사라지게 되는데 더러는 “누구도 그랬는데 뭐…’’ 하며 체념을 하고 더러는 삶 자체에 대한 모든 의욕을 상실하며 더러는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짧은 인생에서 좀 더 보람을 찾으려고도 해 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무런 시원한 해답이나 대책 없이 끝나 버리지요.
Genesis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을 보면 제일 먼저 이 말씀이 나오지요. “아하!...여기에 답이 있겠구나” 하는 묘한 소망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계신데 바로 하나님 이시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여기서 무언가 내가 찾던 마음속 깊이 달려있어온 무거운 추에 대한 수많은 해답들이 얻어질 것만 같은 엄청난 호기심이 생기지 않습니까? 도무지 풀리지 않던 그 많은 이야기들 즉 “WHY” 가 바로 이 성경 안에 있겠구나 하는 꿈이 생기는 것 말입니다.
성경을 따라 들어가 보니 참으로 처음 가 보는 길이지만 언젠가 분명히 한 번쯤은 온 적이 있으나 (그 동안 어찌되어 그렇게 찾아보지 못했는지 모르나) 하마터면 잊어 버릴뻔 했던 귀한 추억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살아나는 아주 신비한 체험들이 실제로 내 앞에 전개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성경속 이곳 저곳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포근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나를 재촉하며 바로 이 성경속 깊은 곳으로 아주 친절하고 평화롭게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데려가는... 때로는 강한 팔로 이끌어 가고 계심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몇가지 궁금한 것에 대한 말씀을 보다보면 점점 깊이를 더하여 가다가 결국 “정말 나는 살았구나” 를 알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아니 “이제사 생명으로 가득찬 진짜 내 나라를 들어가는 구나” 바로 영원한 생명에 드디어 다다르게 되는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나의 영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왜 죽는 것인가?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 죽는것은 나이가 들어서 아니면 병이 걸리거나 사고로 인하여 죽는 것인 줄만 알았으나 성경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이라고 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는 것 뿐 이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직접 지으신 사람에게 왜 이렇게 하셨을까?
창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후에 모든 좋은 것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써 충분히 누리고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처음 지으신 사람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부터 죄가 들어오고 이 죄는 결국 사망을 낳게 되었지요.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
그런데 이 법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자녀로 지으신 사람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랑을 주십니다. 죄로 인하여 죽음으로 끝을 마칠 수 밖에 없는 영벌로 멸망받아야 마땅할 존재들에게 살 길을 열어 주시고 이를 스스로 증거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생명의 법을 주신 것이지요.
Isaiah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로 인하여 그 값을 죽음으로 치루어야 할 우리 모두의 형벌을 죄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오시어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완전히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부활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인한 우리들의 죄 사하심과 그리고 사흘 후에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신 사건이 보여 주시는 죽음으로 부터의 부활사건입니다.
John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깨시고 죽음으로 부터 부활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죄로 인함이었다는것을 인정하면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것이며 이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영생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죄 없는 자를 사망의 권세가 붙들고 있을 수 없구나 하는 증거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한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
이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지금 받으십시오.
Romans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