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0. 12:59ㆍ카테고리 없음
은혜가 아닌 규율이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은혜입니다. 사랑입니다. 아니 실은 적절한 단어가 없어 그냥 이렇게 써 봅니다.
내가 나를 지금 이 순간 보아도 놀랄만큼 죄로 안과 밖이 도배 된 상태를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 자를 위해 대신 죄의 값을 치루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죄 값을 갚아 주셨다니요…..
요 15:12-1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그러나 우리들은 무슨일이 생겼다 하면 바로 이 받은 바 은혜를 적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판단이라는 자기 규율을 먼저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100 이면 100 바로 그 자리에서 반발이 나게되지요.
한 쪽은 자기 자신의 전체 그림 속에서 잠간 보여진 자신의 한 순간의 적절하든 아니든 행위에 대하여 농축된 사연이 많은데도 표현이 된 것이고 다른 한 편은 전 후 사정은 전혀 모른 채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난 것 자체만을 가지고 상황도 충분히 모른 채 자기 눈으로 보여지고 들려지고 감지 된 그 순간의 결과로만 판단하고 잣대로 재 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진실이 아닌 사실로 결론을 지었기 때문이지요.
억울한 호소, 분통 터지는 일, 진짜 싸움, 더 큰 일로 번짐등이 다 이에 기인하게 되지요. 결국 이런일들이 점점 더 공통적으로 인정이 되고 더 다양한 일들이 생기면서 이것들을 모아 율법이라는 엄격한 인간 본위의 법이 생기지만 결국 이 법은 항상 사실 자체에 그것도 다양한 각도로 이해 된 것이 아닌 납득이 갈만한 정도의 주관이 강한 쪽에 근본을 두고 있어 처음 생겼던 진짜 억울함은 그저 가슴속에 묻혀진 채 그것이 옳은 결론인양 되풀이를 거듭하며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지요.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왜 이런가?
인간이 원래 가진 바탕인 죄 때문입니다. 이는 양쪽이 다 해당 되므로 이 세상에서 딱 맞는 일, 옳은 일, 바른 일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 하지요. 항상 기준은 인간이 호흡하고 눈을 고정시킨 바로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은 영 알지도 못한채 그러니 생각지도 못하고 살고 있으니까요.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이 세상에만 오로지 모든 기초를 두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저 크게 해야 할 일과 하면 안되는 일로 나누어 보여 주셨습니다. 열 가지 Guidance 즉 십계명을 주시어 영적인 울타리 정도를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주시고 우리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시며 성령께서 오셔서 이를 도와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십계명 중 단 한 개 도 바로 지키는 사람은 없지만 말이지요.
슥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로 그 빛 가운데로만 걸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완벽은 이 땅에서는 결국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천국 백성의 목표가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 보고 달음질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달음질 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으니 말이지요.
눅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