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3. 06:51ㆍ카테고리 없음
카작스탄
5월 12일 모스크바 공항에 앉아 있습니다. 카작스탄의 알마티를 향하여 가는 중입니다. 러시아 땅을 밟아 보는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터미날 D 에 내려서 터미날 F 까지 오는대는 청장년이라도 열심히 걸어서 25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여느 공항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더러는 분주히 더러는 담소하며 상점들과 통로들을 가득 채웠는데 역시 대도시 공항 다운 모습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정말 알아 볼 수없는 러시아어 싸인판들과 간판등을 제외하고는 통 다른 이상한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매우 순진한 (?) 모습들이며 실제로 매우 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내가 생각하고 있어왔던 이상한 모습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무얼 보고 싶은건가?
물론 Store 의 판매원들은 우리가 평소에 봐 온 것처럼 화들짝하고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다소 무 표정 ... 약간 긴장되거나 뚝각 하는 모습이긴 하나 역시 세련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오히려 촌스럽지만 순진한 모습들이어서 더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라는 것을 세삼 느꼈습니다. 표정은 역시 환경이나 평소의 삶에 많은 영향을 받아 굳어질 경우 갑자기 미소로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해 보질 않아 얼굴 근육이 굳기 때문이지요. 얼굴이 이렇다면 굳어진 마음, 조여 사는 마음, 강팍한 마음은 어떤 삶으로 되어질까?
평소에 준비되지 않은 마음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으며 간다고 해도 행복 할까? 희락, 화평, …..너무 생소하지 않을까? 아하~~ 하나님께서 일평생을 천국에 맞는 사람으로 훈련하시는가 보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다 다르지요.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모자란것이 아니라 다른 것 말입니다. 너는 너로 꽃 피우고 나는 나로 꽃 피우면 어느 누구도 누구와 비교할 일도 견주며 다툴일도 또는 경쟁할 일도 없습니다. 내게 있는 것은 네가 없고 네게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으니 그러므로 나는 없는 너에게 자연히 아니 당연히 나누어 주고 싶어지는 것이고… 그렇다면 서로가 때를 따라 얼마나 보고 싶어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 다같이 이렇게 살면 안되는지요?
1 Corinthians 12:25-27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공항 안에도 살펴보니 역시 대 공항답게 모든 민족과 열방들이 지나 다닙니다. 그리고 모든 Store 들을 보니 뉴욕이나 서울이나 토오쿄오에서 보는 똑같은 제품들로 일관되어 있었으며 심지어는 먹고 마시는 것 역시도 다 들 비슷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두의 성정은 다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같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길을 두고 꼭 싸움들을 해야 하는지? 누가 왜 이 싸움을 먼저 시작하였는가? 한 사람을 전도하여 살리려면 그렇게도 힘들게 밤 낮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서로 왜 이렇게 죽여야만 했었는가? 무언가가 잘 못 되었습니다. 첫 단추가 아주 잘 못 끼워진 것이지요.
언어를 다르게 지으신것은 인간이 한꺼번에 다같이 모이면 자연히 아니 반드시 조물주이신 하나님께 덤벼들어 죽음을 자초하게 되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 11:5-6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흑암속에서도 분명히 같은것을 봅니다. 한 사람이 특히 지도층의 사람 하나가 그의 욕심을 따라 서면 그와 함께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살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