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

2019. 3. 13. 09:15카테고리 없음

힘 빼기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의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옥한음 목사님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답을 우리는 이 땅을 기준으로 우리들 자신으로 부터나 아니면

그 일을 주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요. 그리고 우리가 인지 할 수 있는 정도의

범위내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답을 얻게됩니다. 이 답은 모든 원인과 결과 제공이 바로

이 땅의 것으로 구해지며 얻어지게 되지요.

그러므로 그 열매는 실은 실제 보다 적거나 없는 결과가 많습니다. 하나님과는 영 관계가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는 보여지는 것들이고 진짜는 무슨 뜻을 속에 가지고 있을까?

 

노아 홍수 이 후 2가지가 변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던 물 층이 쏟아져 내려 모든 자외선이 들어 오게 된 것과 고기를 먹도록

허락이 된 것이제요.

노아 이전 사람들은 700년도 살고 800년도 살고 우리가 아는 아담은 950을 살았습니다.

노아 이 후에 수명이 점점 줄더니 성경에 200살을 사는 사람들도 드물게 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100살을 바라보기도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도 좋지만 하루속히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함께 거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머무를 곳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고난

 

이를 통하면 우리는 조금 낮아지게 됩니다. 좀 겸비하게 된다고 할가요? 우리는 그런 일을 통하여 철이 좀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 그러면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 처럼 내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하지 않고 조금은 스스로 제어하는 힘이 생겼다는 뜻이지요.

안보던 인생의 눈치를 조금은 더 보게되고, 내 주장 만을 하던 것은 조금 중지하고 조용히

남의 생각이나 말도 경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예민해 지게 됩니다.

 

이는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는 알 수 없는 길에 서서 열심히 그 길만 가는 인생들에게서 힘을 빼기 원하십니다. 필경은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이니까요.

우선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 만지고, 냄새 맡아서 알며, 맛 보아 아는 육신의 모든 감각이

가는 일을 통하여 힘을 빼시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힘이 빠지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힘이 있으면 육신을 도모하기 때문에

그 힘을 빼야 사는 바로 그 길을 주시려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면서 하고 사는 힘든 일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하나가 공부입니다.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 대학, 대학원, 박사를 거치며 많은 공부를 하지요.

많이 배우면 역시 덜 배운 사람보다 좀 더 낮은 자세가 보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온유하며 좀 더 배려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지식을 힘을 삼아 사람들 앞에서 거들먹 거리는 인간들이 있지요. 이들은 스스로 덜 배운 것을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는 많이 배운 것이 역시 힘. “아는 것이 힘이다에서 나온 좋은 성품, 다듬어진

성품인 것일까?

 

아닙니다.

 

배우면 배울 수록 점 점 더 알 수 없는 끝없이 한계를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지요.

 

언젠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폴리니 가 뉴욕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위하여 왔을때

그를 만나 이렇게 들었지요. “저는 6살로 부터 평생을 피아노를 배우고 연주를 하여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마이스트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점 점 더 배워야 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부족한 가운데 있는 그저 작고 초라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저 피아노를 즐기고

연주가 행복합니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피아노로 보내고 있는데도 …..

 

가만히 보면 많이 배울 수록 우리는 힘이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씩 더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그 만큼 더 힘을 빼야할 필요가 있는 강팍함 때문일까?

 

우리는 배운 것을 통하여 세상에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당연한 원리 이상을 넘어 가지 못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기의 실력이라고 착각을 하지요. 남 보다 나은 것이라고 도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평생 그 생각에 잡혀 삽니다.

이는 “Give & Take” 정신을 키우며 은혜라는 단어에 대하여 굉장한 여러가지 반응의 내성을

키우게 됩니다. 바로 내 힘으로 당연히 취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는 피가 전신을

도는 것입니다.

이러 사람들은 중간에 만난 하나님은 당연히 이런 나를 돕고 안전하고 힘들지 않게 해야 하는

존재 이상으로는 생각지 않게 됩니다. 나는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내가 중심이 되어 정한 가장

Best Way 를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를 한가지 더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생각을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신다는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 바로 이 사랑이 하나님을 그냥 계실 수 없게 만들게 됩니다.

바로 끝없이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하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요.

이를 회개라고 합니다.

 

방향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것이지요.

자기가 갖고 있는 힘이 전부인 인간의 불쌍한 단계를 넘어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힘이 빠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는 육신의 힘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과는 반대 편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아니 대부분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배우나 덜 배우나 이는 모두 주를 위한 하나의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하늘에 진짜를 쌓고 이로 인한 상급은 이 세상의 모든 영화와도 비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데 이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것이 정녕 우리가 사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