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4. 12:56ㆍ카테고리 없음
나는 누구인가?
삼하 7 :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시 16 : 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사 43 :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과연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가끔 이런 생각이 날 때마다 왠지 자신이 없어지는데 그럴때면 역시 전에 감동이 되어 적어 놓았던 하나님의 말씀들을 다시 읽으면서 좀 뻔뻔한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말씀을 다시 한 번 나에게 적용시켜보며 위안도 받고 용서도 구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아멘, 아멘” 해 봅니다. 그러면 참 신기하게도 묵직한 추를 달고 있던 마음은 점차로 가벼워지며 그 어떤것으로 부터도 점 점 자유케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 49 : 5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 눈을 감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고 한 번 설명을 해 보십시오.
음~ ~ 내 이름은 XXX, 학교는 XXX를 나왔고 XXX교회에 다니고, 배우자는 XXX이고, 아이들은 XXX, XXX, ….가 있고, 나는 XXX 음악을 좋아하고 스포츠는 XXX를 좋아하고, 음식 먹기를 좋아 하는데 특히 XXX를 좋아 하고 옷은 어떻게 입는 것을 좋아하고, XXX 는 아주 싫어하고, 우리 부모님은 XXX, XXX 이시고, 나는 키가 중간 정도이고 나는 아주 잘 생겼고 특히 눈이 예쁘고…..
이렇게 한 참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설명한 그 사람이 정말 나 입니까? 그럼, 내 생각이 나 인가? 내 자존심이 나 인가? 아니면 내 몸이 나 인가?.......
우리는 진짜 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꼭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진짜 나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 아이는 배 고프면 울고 젖을 먹고나면 자고 그리고 쌉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모든것을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시지요. 조금 있으면 엄마 아빠가 눈 앞에서 “도리 도리 짝자쿵” 여러가지로 아이에게 손짓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엄마 아빠가 하는 모습을 조금 따라해 봅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자지러지며 좋아하지요. 그리고 조금 후에는 말을 또 따라합니다. 그러면 이 번에는 엄마 아빠가 아예 때굴 때굴 구릅니다. 그러다 걷기라도 시작하면 전체 식구들이 완전히 매 달려서 환호하고 즐거워합니다.
이 모습을 본 아이는 자연히 이런 생각을 갖게되지요. “아하~ 내가 엄마 아빠가 하시는대로 따라하면 정말 좋아 하시는구나” 그러므로 아이는 자라면서 자기 자신을 키워 나가는 것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로써 무언가 꽃을 피어 가는 것 보다는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게 중점을 두는 기본 개념이 초기에 생깁니다. 조금 크기 시작하면 모두와 함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사 입고 모두의 유행과 맞추려고 들며 특히 무조건 유명 브랜드를 찾아서 걸쳐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명하다고 하는 유명한 학교를 들어가려고 애를 쓰게되고 누가 보아도 좋다는 집안의 배우자를 맞이하려 하며, 다들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들어가려 수 많은 사람들과 과잉 경쟁을 하고 좀 으시댈 수 있는 좋은 자동차를 무리가 되더라도 사며, 또한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좋다고 하는 동네에 크고 넓고 좋은 집을 사고 또 관리를 하지요.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 평생을 수고하고 땀을 흘립니다.
이렇게 떠 밀려서 살다보면 나의 선택은 어디론가 가버린지 오래인 상태에서 일평생을 그야말로 썩어질 것에 종 노릇하고 허무에 굴복하는 삶을 살다가 조금 후에는 그 모든 것을 다 놓고 떠나가고 얼마 후에는 그는 잊혀집니다.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과연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이런 삶을 위하여 이 땅에 온 것일까요? 법조인, 과학자, 경제인, Medical Doctor, 대학 교수, 국회의원, 비지니스맨, 신문기자를 하려고 모두가 다같이 똑같은 목적으로 삼고 한 방향을 위해서 죽어라고 일제히 뛰어가는데… 그래서 남긴것이 무엇이며 나는 과연 이 모든 열심있는 삶을 통하여 정말 행복했고 참 보람이 있어왔는가? 그리고 진정 살 맛나는 생을 현재는 살고 있는가? 평생을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이렇게 살다가 도저히 안 되면 결국 자신은 슬쩍 빠지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그 꿈을 자식에게로 옮기며 그 자식에게 공을 드립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다” 며… 아이가 실제로 무엇을 원하고 어떤 달란트를 갖고 있는지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의 못 다한 꿈이 (아니 여한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는 조물주인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죄악을 도모하는 것이며 어쩌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지요. 자식은 내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내 소욕을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내 소유로의 존재가 아니며 우리는 그 귀한 자식을 하나님으로 부터 의뢰 받은 청지기들로써 하나님께서 어떤 달란트를 주셨든 이를 아이가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사랑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부모로써 맡은 바 양육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하나님의 꿈나무 인 것입니다.
나는 생각해 보면 너무 바쁘게 살았습니다. 30세가 넘은 것을 38세에 알았지요. 그 때는 그 빠른 세월에 좀 놀라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넘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40 세가 넘은 것을 43 세에 알았을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날 우연히 TV 를 보는데 NASA 가 제공한 프로 였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아마도 핵 물리학 박사들 정도로 보이는 약 200여명의 과학자들을 앞에 놓고 어떤 젊은 (아니 어리다고 할까?) 과학자가 칠판에 무언가 방정식으로 가득 덮어 놓고는 설명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마 중국인 천재인가 보다” 라고 하며 나로 부터 전혀 관계없는 일로 미루어 버리려는 순간 그 사람의 이름 자막이 뜨는데 Last Name 이 “Kwak” (곽) 이었습니다. “아니 한국인 중에 !!!” ….. 나는 살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고 자부하면서 살았습니다. 누가 무슨 일을 벌여도 “으응 그런것 쯤은 나도 약 2주 정도 파고 들면 너보다 날거야” 하는 생각이 늘 있어 왔지요. 그 날 나는 무너졌습니다. 그 “곽”씨가 써 놓은 칠판 전체에 빽빽한 것들은 어느것 하나도 전혀 알 수가 없는 것들 뿐 이었습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과연 성공한 사람인가? 성공이 과연 무엇인지도 모르며 그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좋은 남편이었나? 좋은 아빠 였는가? 좋은 친구였는가? 좋은 신앙인 이었나? 좋은 사업가 였는가? 명예가 있나? 돈을 벌어 놓았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몸이 갑자기 깊은 수렁을 타고 밑으로 밑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약 일주일을 끙끙 앓았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생각 중에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도 제대로 다 받아 누리고라도 살아 왔는가?”… “그래 맞아 나는 그것도 놓치고 살았구나”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우선 나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벽을 없애야지. 그러려면 우선 내가 느낄 수 있는 어떤 모양의 죄 부터라도 없애야겠다” 했지요. 물론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것도 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디로부터 이 세상에 와서 도데체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한정된 시간을 사는 모든 인간 내면에 깊숙히 갖고 있는 기본적인 질문과 정말 알고 싶은 생각들이 아주 묵직하게 내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는 나(우리)의 출생과 장래에 관하여 이렇게 짧은 말로 표현 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설마하며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나 믿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쉬지않고 읽어 내려가는데 하나님은 나의 안전지대요 보호막이 되어 주시기 까지 확신을 주심이 감사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멘하면 그 말씀이 나에게 임하는 것이지요?”... 내 온 몸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젖어 들어가며 “나(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며 외쳐댔지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이지요?” 했더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자가 이런 말씀을 받아도 되는가? 만감이 교체하며 어느덧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이것이 다 무슨 말씀들입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자신을 우리 부모님 보다도 먼저 알고 계신 하나님, 우리를 실제로 지어주신 분이며 무언가 기대를 우리 모든 각자 각자에게 갖고 계신 하나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이 모든 말씀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생각을 해 보아야겠지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말씀들이 주어지고 있으니까요.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 온 목적이라고 하십니다. 나로 부터 시작하여 모두가 하나님을 알아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을 붙드시고 나에게 최상이며 좋은 것들을 허락하시면서 하나님은 나를 들어 영광을 받으시고자 이미 환경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 확실합니다. 이를 느끼고 알고 살면 생명의 큰 기운 안에서 더욱 감사와 찬양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요?
신명기 2: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신명기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30:1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여기에 우리가 어떤 귀가 되었건 듣고 싶은 말씀들이 다 써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와같이 다 되어 질 것을 원하며 죽을 고생하는 것 아닙니까? 무언가 복잡한 일을 주신 것도 아니며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면 결국은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신다’ 는 엄청난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약속이 이미 있는 가운데 우리는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일이 우리 힘으로 가능 할까요?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자 만 가능한 일입니다.
여호수아 1: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면서 큰 힘으로 나의 곁에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결론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의지해 온 힘이 좀 있어보이는 인생들과는 도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입니다.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아~~ 나는 하나님의 이들(딸)임을 알았습니다. 단, “내가 전하는 영”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Holy Spirit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성령을 환영하고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시편 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그러면 그 성령 하나님께서 자녀인 나를 친히 보시고 훈계를 하신다고 하십니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바로 내 참 아버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때라도 하나님과 늘 동행하십시오 성경에서 이런 자의 예로 “에녹”을 들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시편 81:10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지자로 세우셨으니 우리의 바램 역시 여기에 걸맞는 차원의 바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늘 좁은 시야로 내 호주머니 사정, 내 주변 사정 만을 놓고 흙만 바라보며 애걸복걸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차원을 높여 주시기 위한 수 많은 하나님의 방법을 다 동원하실 것입니다. 그에 따른 강한 정도는 사랑의 깊이 만큼이나 대단합니다. 여기에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지요.
시편 81:16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모든 필요도 하나님의 차원에서 다 채우시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만족 할 만큼…..
잠언 4:11
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우리는 알 수 없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의 신실하심으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이로인한 정직을 내는 길로 인도 하심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보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에 감사가 있다면 그것이 증거입니다.
아가 7:13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그리고는 전혀 모자람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해 주고 계십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그리 하시고도….. 그래도 늘 하나님을 잘 모른 채로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하나님의 지키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사야 44:21-22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혹 하나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절절히 부르시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바로 우리 옆에서…..
이사야 45:4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하나님으로 부터 받으신 칭호가 무엇입니까? 자 그럼 그것을 놓고 기도해야 하겠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신 목적일테니까요.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 자녀, 그리고 자녀로써의 삶” 바로 “소명”(Vocation) 이라고 부릅니다. 소명이라는 말은 내가 앞으로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 드려야 할 의무가 따르는 어떤 해야 할 일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이미 주어진 바로 나로써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바로 내가 나로써의 정확한 인식이 없다면 소명도 있을 수가 없겠지요? 나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의 각성이 모든 Question 을 해결 해 줄 것입니다.
이사야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아하~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이 극심한 고난도 실은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위해 곧 이 길이야 말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최상의 삶을 나아가서는 영원한 삶을 위한 훈련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모든 것을 갖추어주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 결국은 이루실 것입니다.
이사야 49:8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우리는 지금 알 수 없는 Miserable 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곁 길로 아니 죽는 길로 자꾸 가려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럼 바로 하나님께서 그 길을 잡아주시려는 사랑의 간섭하심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살리시기 위해서지요.
이사야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25-2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줄 알리라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또 한다 한들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이사야 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간혹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잠시 낯을 돌리시는 때가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 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시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의 낯이 가리워진 상태의 그 고통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진짜 고통이 됨을 훈련하시기 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 우리가 깨닫고 주를 향하면 그 후에 채우시고도 넘치게하시는 하나님의 싸매어 주심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부터 주어지지요. 참 좋으신 하나님…..
이사야 54:9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그렇게 하시고도 너무나 안쓰러워하시는 정말 좋으신 하나님……
예레미야 1:19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하심이 늘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늘 이렇게 표현하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요한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원래 우리를 자기의 자녀로 만드시고 좋은 권세들을 주셔서 에덴동산에서 풍요로이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먹으면 정령 죽게 된다는 선악과를 뱀의 꼬임에 빠져 그만 먹고 말았습니다. 이와동시에 인간에게는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급기야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 일평생을 수고하며 짧은 인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 후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바로 그 죄안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게 죽으신 예수님이 바로 각자 각자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만 마음으로 믿으면 내 죄의 값이 예수님으로 갚아지고 나는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선포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가 주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그리고 바로 또 이렇게 확인을 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써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는 단 한사람도 빼지 않고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살다보면 이런일도 저런일도 있지요” 할 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겪게하시는 고난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동안 땅 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바로 이 삶이 전격적으로 하나님 백성으로써의 삶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 또한 그러는 중에도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고통이 따를 수도있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을 모르는 삶 = 강팍한 삶)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서 즉 영적인 새 삶을 받게 되는 살리는 고통 (Spiritual growing pain) 을 겪는 것입니다. 이는 망치질하다가 손을 잘 못 찍어 아픈 그런 통증과 구별됩니다.
요한1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한1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한1서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한1서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면 마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누구인데 이런 말씀들이 주어지는 것인가요?
우리는 상기의 여러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은 그냥 태어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그리고 그 자녀로써 살 권리가 있음을 (소명) 알게 되었습니다.
자 ! 이제 우리의 Identity 가 들어났으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져야 할까요?